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서 왕 전설 (문단 편집) == 탄생 배경 == 전설의 배경은 [[로마 제국]]의 약화된 [[로만 브리튼 이후]](sub-Roman Britain) 시대로 [[로마군|로마 군단]]이 철수한 5, 6세기경이다. 브리튼인들은 로마의 선진 문화를 수용해 [[로만 브리튼]]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고 [[기독교]]를 믿는 이들은 로마군이 철수한 이후, 이도교를 믿는 이민족의 침입에 직면하게 된다. 아서 왕의 초기 설화들을 보면 아서 왕은 [[브리튼]]의 영웅으로 이민족의 침입에 맞서고 초자연적인 존재와 싸우는 [[신화]]적인 면을 가지고 있었으며, 당시 브리튼인들의 멸족과 망국에 대한 위기감과 구원자에 대한 열망이 아서 왕 전설의 바탕이 되고 있다. 로마 군단이 철수한 힘의 공백 아래 로마화된 켈트족인 [[브리튼인]]들은 야인(野人) 켈트계인 [[픽트족]], 게인족, 스코트족의 잦은 약탈로 막심한 피해를 당하게 되었고 이후 주트족, 색슨족, 앵글로족, 프리시족 등 게르만계 부족들까지 [[북해]]를 건너오면서 영국 섬 안의 혼란은 더욱 가중되고 있었다. [[세계사]]적 관점으로 보면 [[게르만 대이동]]이 진행되고 있었고, 이에 따라 [[브리타니아]]의 지배층이 게르만계인 앵글로색슨족으로 바뀌게 되는 시기였다. 이 시기의 브리튼섬은 국세가 기울어진 로마 제국이 대륙의 방어를 위해 주둔군을 모두 철군시킨 이후, 토착민족인 [[브리튼인]]들과 [[유틀란트 반도]]에서 몰려온 [[앵글로색슨족]] 등의 [[게르만족]]에서 갈라진 일파 간의 치열한 영역 싸움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이었다. 역사적으로 보면 브리튼인들은 지속적으로 대륙에서 건너온 게르만족과 로마군 주둔 시절부터 북쪽 [[칼레도니아]] 지역에 살고 있었던 픽트족 등에 밀려서 [[6세기]] 이후 [[웨일스]] 지역으로 쫓겨나고 만다. 이 시기는 흔히 [[영국/역사|영국 역사]]에서 암흑기로 불리는 시기로, 당대의 관련 기록이 극히 적기 때문에 이 시기의 역사는 한참 후대에 기술된 문헌이나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간접적으로 추정하고 있다. 고고학적 발굴조사에 따르면, 브리튼인들에게 암울하기만 했던 이 시기에 일시적으로나마 브리튼인들이 [[게르만족]]에게 군사적 승리를 거두고 게르만족의 공격이 크게 위축되었던 적이 있었는데, 학자들은 이때 브리튼인들의 승리를 이끌었던 군사령관이자 부족장을 바로 아서 왕 전설의 원형이 되는 인물로 보고 있다. 하지만 이 시기의 문헌 기록이 거의 전무하여 아서 왕의 모델이 되는 인물이 과연 실존했는지, 실존했다면 어떤 인물이었는지 등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. 자세한 것은 [[아서 왕]] 문서를 참조하기 바란다. 이 시기 [[영국]]의 거의 유일한 당대 기록물로 [[가톨릭]] [[수도자]] 길다스(Gildas)가 [[라틴어]]로 쓴 '''<브리타니아의 파멸과 정복(De Excidio et Conquestu Britanniae)>'''이라는 일종의 [[연대기]]가 있는데, 이 기록에 보면 브리튼인들이 마운트 바돈의 전투(Battle of Mons Badonicus, 바돈산의 전투)에서 게르만 일족인 [[앵글로색슨족]]을 크게 무찔렀다는 기록이 있다. 하지만 이 기록에서는 브리튼인들을 누가 이끌었는지에 대해서는 나와 있지 않다. 아서 왕에 대한 언급은 [[9세기]]경 [[웨일스]]의 [[수도자]] 넨니우스(Nennius)가 감수한 것으로 알려진 '''<브리튼의 역사(Historia Brittonum)>'''에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이 문헌에서는 아서 왕이 참전한 12개의 전투에 대한 기록이 있다. 이 기록에 따르면 아서 왕은 마운트 바돈 전투에서 십자가 깃발을 올리고 홀로 960명을 쓰러뜨렸다고 되어 있다. 이어 [[10세기]]경의 문헌인 '''<웨일스 연대기(Annales Cambriae)>'''에도 바돈 전투와 더불어 아서 왕과 메드라우트(Medraut, Modred)가 맞붙었던 [[캄란 전투]]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며 이때까지만 해도 모드레드가 반역자라는 이야기는 없었다. 로만 브리튼인들은 서쪽의 웨일스로 밀려났으며 일부는 프랑스에 브르타뉴(Britany)로 건너갔고 [[잉글랜드]]에 남아 있던 브리튼인들의 경우 앵글로색슨족의 지배를 받다가 동화되었다. [[헤이스팅스 전투]] 이후로 사본이 남아 있었던 [[베오울프]]를 제외한 [[고대 영어]]로 쓰여진 모든 문학 작품들이 소실되는 일이 발생하였으며 [[노르만 왕조]] 및 [[플랜태저넷 왕조]]의 영향으로 궁중 소설풍의 아서 왕의 전설이 유행하게 된다. 시간이 지나 결국 앵글로색슨이 영국 역사의 승리자로 남게 됨으로써 아서 왕은 영국을 지키는 국가적 영웅이 되었다. 잉글랜드의 지배층은 현대의 [[윈저 왕조]]에 이르기까지 [[게르만]] 계열이며, 예외적으로 [[튜더 왕조]]는 브리튼([[웨일스]]) 계열이다. 튜더 왕조의 시조 헨리 7세는 자신의 장남의 이름을 아서로 짓기도 했다. 아서 왕 전설 속 배경인 시대에는 [[기사(역사)|기사]]의 덕목은 있을지 몰라도, [[기사도]]가 형성되기 이전이라 기사도가 존재하지 않았다.[* 물론 전설에 고증 따지는 게 무의미하긴 하지만, 이 시기는 [[서로마 제국]]이 멸망하던 시기이다. 따라서 [[원탁의 기사]]들의 모습도 중세의 기사들보다는 로마 제국 무인들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. 실제로 로마 제국 시절 브리튼섬은 로마화가 꽤 진행되었고, [[반달족]]이나 [[고트족]]의 게르만 전사들과도 당연히 다른 모습이었다.] 또한 원탁의 기사들 한명 한명이 각각 독립된 전승의 주인공이며, 이들이 하나의 단체로 묶인 게 바로 원탁의 기사다. 여러 가지로 변형된 이야기가 존재하는데, 원작에 가까울수록 켈트적 요소가 많고, 변형이 많이 된 이야기일수록 강한 무기 등이 등장해 재미를 우선시하는 면을 보인다. [[랜슬롯]]의 검 [[아론다이트]], 아니 랜슬롯 자체도 [[프랑스]]의 [[음유시인]]들이 중간에 짜깁기해 넣은 이야기의 변형 과정에서 추가된 것이다. 후기의 것들은 무용담의 성격은 옅어지고, 궁정 소설의 성격이 강해졌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